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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 Journal] `제2의 유전자`…장내미생물 연구로 `질병정복` 꿈꾼다

기사입력 2018.04.04 04:04:02
# `톡소플라스마원충(Toxoplasma gondii)`이라는 미생물은 초생달형 원충류 중 하나로 소·돼지·양·개·고양이 등의 조직에 기생한다. 이 미생물이 가끔씩 쥐에 감염될 때가 있는데, 쥐의 조직 내에서는 톡소플라스마원충이 증식하지 못한다. 꼼짝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된 상황에서 이 미생물은 어떤 조치를 취할까. 놀랍게도 쥐의 뇌로 이동해 `겁 없는 쥐`로 만든 후 고양이에게 대들어서 잡아먹히게 한다. 미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쥐를 조종해 고양이로 숙주를 갈아타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천종식 서울대 교수는 "미생물이 동물의 정신과 신경을 지배하는 좋은 예로 자주 소개하는 일화"라며 "최근 연구 결과 사람도 미생물의 지배를 받는 것 같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질병은 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건강은 장속 미생물에 의해 결정된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우리 몸속에는 무려 39조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이는 약 30조~37조개로 알려진 사람의 세포 수보다 많은데 미생물 종류도 4000~1만종 이상으로 추정된다. 미생물을 `제2의 유전자` `제2의 장기`라고 부르는데 이쯤 되면 내가 미생물의 주인인지, 미생물이 내 주인인지조차 헷갈린다. 지구에서 미생물이 사라진다면 먹이사슬이 붕괴되면서 인간은 불과 1년 안에 사회 붕괴를 경험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빌 게이츠에게 `최고 수준의 과학 저널리즘`이라는 극찬을 받은 에드 용의 저서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 따르면 사람은 미생물로 구성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식품 1g을 섭취할 때마다 약 100만 마리의 미생물을 삼키고, 우리 피부와 체내는 물론 세포 안에도 살고 있으며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별보다 한 인간의 소화관에 서식하는 미생물 개체 수가 더 많다. 우리 장내 세균의 무게는 보통 1~3㎏으로 추정되는데, 1.3㎏인 뇌와 1.5㎏인 간(肝) 등과 맞먹는다. 1~3㎏의 장내 세균이 인간 유전자보다 150배 이상 많은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과학자들의 연구욕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인간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미생물과의 조우`로 삶을 시작한다. 우리 몸속 미생물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박테리아인데, 출산을 앞둔 여성의 질 속 박테리아 구성비는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엄마가 가진 가장 유익한 균들이 아기를 위해 질과 장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무균 상태 태아는 산도를 빠져나오는 동안 엄마의 질 속에 있는 박테리아로 `미생물 샤워`를 하고 나온다. 이때 얻은 유익한 균들이 태아의 건강과 면역력, 질병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그중에는 좋은 균과 나쁜 균이 있고 `(있거나 없거나) 괜찮은 균`도 있다. 인류는 질병과 싸워 이기기 위해 `나쁜 균`을 주로 연구해 왔지만 최근 몇 년 새 `좋은 균`에 대한 연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괜찮은 균`이다. 별다른 역할이 없는 듯 보이는 이 중간균은 우리 몸속 세균 중 50~60%를 차지한다. 김석진 좋은균연구소 소장은 "이 중간균들을 넣어주니 유해균 활동과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났다"며 "이 중간균의 기능이 규명된다면 장내 미생물 연구가 훨씬 더 흥미로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바이오헬스케어업계에서도 장내 미생물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현대인에게 알레르기와 아토피, 소화기 염증 질환 등이 많아진 것은 가공식품과 항생제 남용, 위생적인 환경과 지나친 소독 등으로 착한 미생물과 기생충 등이 사라지면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지에 사는 수렵 채취인이나 개발도상국 시골 주민들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해보면 도시인과 달리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란 미생물(Microbe)과 생물군계(Biome)의 합성어로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말한다.

게이츠는 지난 1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바이오투자 포럼인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기조연설자로 나서 글로벌 신약 개발의 키워드로 장내 미생물을 강조하기도 했다. 게이츠는 "영양실조와 장내 감염에 취약한 빈곤국 아이들은 마이크로바이옴이 미발달해 면역체계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질병에 자주 걸리고 뇌 발달도 더뎌진다"고 지적했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부유한 국가 아이들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가공식품과 항생제에 자주 노출된 탓에 비만, 자가면역질환, 당뇨, 고혈압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어느 국가에서 자라든 어렸을 때부터 균형 잡힌 영양 섭취,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유지하면 건강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며 "영양식 섭취와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이식하는 분변이식 등을 통해 건강한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성화하는 사업을 최근 시작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첫 번째로 발행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표지 논문도 장내 미생물 관련 연구가 장식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은 1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악성 흑색종 환자들의 대변 샘플에서 특정 박테리아 수치가 높다고 밝혔다.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은 전이가 빠르고 치명적인 암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이 악성 흑색종 환자 42명의 대변 샘플을 조사했다. 42명 중 38명은 면역 치료가 가능했고 나머지 4명은 약물치료만 효과가 있었다. 면역 치료가 가능한 38명의 대변 샘플에서는 몸에 이롭다고 알려진 장내 미생물이 8종이나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면역 치료가 불가능했던 4명의 대변에서는 나쁜 장내 미생물 비율이 높았다. 이후 연구진은 면역 치료가 가능한 환자 3명과 그렇지 않은 환자 3명의 대변 샘플을 각각 쥐 창자에 옮긴 뒤 흑색종 종양을 이식했다. 그 결과 면역 치료가 가능했던 환자의 대변 샘플을 이식받은 쥐는 종양 크기가 느리게 성장한 반면, 면역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대변 샘플을 이식받은 쥐는 종양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미생물이 종양에 대한 면역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라며 "면역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은 장내 미생물 불균형 때문에 면역 세포가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럿거스대 연구진이 지난 3월 9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섬유질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장속 유익균이 늘어나 당뇨병 증상이 완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중국의 2형 당뇨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6년간 추적 조사했다. 한 그룹은 당뇨 환자에게 처방하는 일반적인 식단을 먹도록 했으며 다른 그룹은 통곡물을 비롯해 섬유질이 풍부한 식단을 줬다. 두 그룹 모두 당뇨병 환자인 혈당 강하제인 `아카보스`를 복용했다. 12주가 지난 뒤 섬유질이 많은 식단을 섭취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과 비교했을 때 공복은 물론 식후 혈당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체중도 더 많이 감소했다.

연구진은 "놀라운 점은 환자들의 대변 샘플을 조사한 결과 나타났다"며 "섬유질을 많이 섭취한 그룹은 특히 짧은사슬지방산(SCFA)을 생산하는 장속 세균 141종 가운데 15종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 15종이 당뇨 개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연구진은 "SCFA가 늘어나면서 장속이 약한 산성으로 바뀌었다"며 "이 같은 작용이 유해균을 줄일 뿐 아니라 인슐린 생산을 늘려 혈당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를 이끈 자오리핑 럿거스대 교수는 "인체 건강 유지에 필요한 이러한 과정은 세균이 숙주인 인체에 선물해주는 일종의 생태계적 서비스"라며 "이런 체내 생태계 서비스 공급자를 활성화하고 늘림으로써 인체가 잃거나 줄어든 기능을 회복 또는 증강하는 데 초점을 맞춰 개인별로 맞춤화한 영양 섭취가 당뇨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의 예방과 관리에도 새로운 접근법을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우리가 먹는 약의 상당수가 장내 미생물 성장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는 결국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질병으로 연결될 수 있다.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이 지난 3월 19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약의 4분의 1가량이 장내 미생물 성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시판 중인 약 성분 1197개를 대표적인 장내 미생물 40종에 넣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약뿐 아니라 인체 세포에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았던 약제들도 장내 미생물에 상당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항생제·항바이러스는 약 80%의 장내 미생물 생장을 방해했고 인체 세포를 대상으로 만든 약제 중 약 25%가 1종 이상의 장내 미생물 생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 변화는 우리 몸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미생물과 약, 인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크론병과 염증성 장 질환 등 관련 질환이 크게 늘고 있다. 이동호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바이오뱅크힐링 대표)는 "약 30년 전 서울대병원에서 진료하던 중 10년간 크론병 환자를 모았는데 고작 13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우리나라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환자를 합치면 5만명은 족히 된다"며 "30년 새 한국인 유전자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섭취하는 음식이 변했고, 그로 인해 장내 미생물 균형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평소 건강한 장내 미생물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가장 큰 적은 항생제 오남용이다. 천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항생제를 먹은 후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없어졌는데 9개월 동안 복구가 안 되더라"며 "항생제를 먹을 때에는 장내 미생물 환경에 `핵폭탄`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피치 못하게 먹어야 한다면 유산균과 같이 먹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식단관리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좋거나 나쁘더라도 어떤 음식을 먹고 장내에 어떤 세균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유전자 운명이 바뀐다"며 "어떤 음식을 먹어야 내 입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이 좋아할까를 생각하면 된다. 식이섬유가 많은 신선한 채소와 곡식 위주로 식단을 짜고 가공식품이나 육류를 줄이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 <용어 설명>

마이크로바이옴 : 미생물과 생태계의 합성어. 영어권에서는 우리 몸속 많은 미생물을 `마이크로바이오타`로 구분해서 사용함.
프로바이오틱스 : 살아 있는 미생물, 그중에서도 유산균처럼 우리 몸에 들어가서 좋은 일을 하는 유익균을 말함.
프리바이오틱스 : 음식에 들어 있는 장내 세균 환경을 좋게 만들어주는 성분.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

[신찬옥 기자 / 김혜순 기자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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