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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벤처] 돈·인재 빨아들일 국가대표급 클러스터 먼저 만들어야

기사입력 2017.03.08 04:04:02
◆ 바이오벤처 1000개 키우자 ⑥ / 지자체 바이오 클러스터 붐…성공전략은 ◆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생산기지로 발돋움하고 있는 인천 송도 전경.
# "바이오 클러스터의 첫째 조건이오? 아주 맛있고 근사하고 커다란 레스토랑을 만들면 됩니다." 임재승 차바이오텍 전무가 옥스퍼드대 연구자에게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얼핏 농담 같지만 바이오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대화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창출되고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시계획 및 경제학 전문가인 아브라함 쉬레게(Abraham Shragge)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도 "샌디에이고 등 미국 내 클러스터들을 보면 호텔, 레스토랑 등 굉장히 많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면서 "좋은 식당 등은 바이오 클러스터에서 중요한 인적 자원을 모을 수 있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는 지금 `바이오 클러스터`를 육성 중이다. 국가 주도로 오송과 대구 경북에 조성한 첨단의료산업복합단지를 비롯해 입주기업들의 영향력이 큰 송도와 판교, 대전 외에도 제천, 진주, 안동, 화순 등 각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의료나 제약바이오, 헬스케어 관련 클러스터를 표방하고 있다. 경쟁이 과열되다보니 전문기관과 기업 유치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정부 투자가 분산되면서 제대로 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오 산업 강국인 미국도 전통적인 강자 보스턴과 도전적 성향이 강한 사우스샌프란시스코, 벤처 기반이 탄탄한 샌디에이고 등이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최근 글로벌 흐름을 보면 바이오 클러스터 경쟁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지역 간 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다"면서 "강력한 클러스터는 바이오제약 강국의 필수 요소인 만큼 전략적으로 `K 바이오 클러스터`를 육성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클러스터 육성전략 만들고 사회적 합의 끌어내야

바이오 클러스터의 키워드는 집적과 연결 그리고 시너지 효과다. 대기업과 제약사 연구소들이 다시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지자체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정부 주도로 수천억 원을 쏟아부었고 2038년까지 총 8조6000억원 투자가 예정돼 있는 첨단의료산업복합단지마저 존폐 논란에 휘말렸다. 감사원이 지난해 12월 두 첨복단지 존치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 두 단지 운영비는 498억원인데 재단 자체 수입금은 22억여 원으로 4.4%에 불과했다. 2년간 평균 가동률은 38%에 그쳤고, 최근 3년간 필요한 인력 669명의 절반도 안 되는 319명밖에 채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정부가 2018년부터 운영비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바꿔 2025년까지 지원을 연장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각 첨복단지는 2025년까지 총 경비의 50% 수준까지 부담할 수 있도록 자립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지원예산이나 인프라스트럭처, 인재 채용 등에서 조건이 훨씬 더 열악한 다른 지자체 클러스터들도 피해갈 수 없는 숙제다.

최윤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첨복단지의 경우 어느 지자체로 갔더라도 지금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서 오송과 대구·경북이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라며 "지금 갖춘 인프라를 바이오 기업들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선임연구위원은 또 "바이오 산업 육성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50여 개국 중 24위에 불과한데 이는 정책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라며 "특히 이해당사자들 간에 갈등을 조정할 주체가 없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레드바이오로 통칭되는 바이오제약 산업은 농식품을 포괄하는 그린바이오나 에너지·환경을 의미하는 화이트바이오와도 관계가 깊다"면서 "장기적으로 식량과 에너지 문제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데, 이를 아우르는 정책적 혜안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원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글로벌 마케팅 차원에서 `K 바이오클러스터` 브랜드를 만들어 주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지자체들끼리 전략적으로 협력할 필요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경우에도 다자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납득할 만한 절차를 만들 주체가 필수적이다. 경기도가 판교와 광교, 향남 제약단지를 묶어 바이오밸리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인접한 지자체인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세종 바이오밸리, 오송 첨단복합의료산업단지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이 교수는 "스웨덴과 덴마크 국경에 위치한 `메디콘 밸리`는 두 나라가 출자해 함께 운영한다. 규모의 경제를 키우기 위해 협력하는 것"이라고 소개하며 "국가끼리도 하는데 지역끼리 못 할 이유가 없다. 각 지역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 인접 지역과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글로벌 제약기업 유치하려면 대표 브랜드 만들어야

싱가포르 바이오폴리스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바이오 클러스터들은 글로벌 제약기업을 유치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RTP(Research Triangle Park) 클러스터가 성공한 것은 영국 제약사인 GSK를 유치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제약기업 유치`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2000년부터 5년간 270억달러에 달하는 정책자금을 투입했다. 법인세와 R&D 세액에 대해 감면 혜택을 주고 인프라를 조성해주며 글로벌제약사와 함께 전문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그 결과 GDP 중 제약바이오 산업 비중이 1999년 1.24%에서 2014년 2.45%로 2배 증가했고, 인당 부가가치도 제조업 평균 10.2배로 급증했다.

최근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제약사와 인재 모시기에 나선 중국도 무서운 경쟁자다. 중국 항저우시는 정부 주도 바이오 산업 육성을 통해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한 대표적인 사례다. 항저우가 경제기술개발구 내 샤사(下沙) 지역에 바이오단지를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지만 현재 중국 바이오 산업의 수도로 꼽힌다. 의약 분야에 특화된 150여 개 바이오 기업들이 입주해 있고, 이들의 매출 합계는 150억위안(약 2조300억원·업계 추정치)에 달한다. 항저우시는 5년 내에 샤사 단지의 바이오 산업 매출을 500억위안(약 8조7000억원)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워 두고 있다.

항저우가 단기간에 `바이오 산업 황금시대`를 맞게 된 것은 정부의 재정투자와 행정서비스, 인재 유치 등이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낸 덕분이다. 시 정부는 단순히 바이오단지를 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이오기술의 실험, 검사, 표준, 특허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또 과감한 인재 유치 정책을 통해 싱가포르항저우과기원, 저장성해외유학인재창업원, 생명과기센터 등을 중심으로 중국에서 가장 많은 바이오 분야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 규모 의약업체들도 항저우에 경쟁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3년 머크가 1억2000만달러를 들여 항저우에 생산라인을 건설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화이자가 샤사단지에서 바이오센터 건설을 시작했다. 투자액 3억5000만달러는 화이자의 해외 투자로는 8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 항저우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바이오 분야 창업 수도를 목표를 하고 있다. 베이징 중관춘이 인터넷, 선전 화창베이가 IT제조 분야에서 각각 중국을 대표하는 창업기지라면 바이오 분야에선 항저우가 젊은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겠다는 것이다. 시정부는 2015년 6억위안(약 1000억원)을 투자해 바이오 분야에 특화된 창업 인큐베이터를 설립했고, 현재 200여 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인류의 미래를 바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을 선택하게 하려면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대표 클러스터를 육성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계적 클러스터·지역 거점 혁신 클러스터`로 나눠 투 트랙으로 지원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이 교수는 "산업혁신과 균형발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균형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문제"라며 "대표 클러스터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지자체가 클러스터들의 강점과 특성을 살려 정책실험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 자립할 수 있는 창의적 방법을 찾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고급인력 유치 환경·1000병상 이상 연구병원은 필수

바이오 클러스터는 기업과 관련 연구기관, 대학과 병원 등 산학연병의 시너지를 노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동연구 단지다. 원천기술을 공급할 대학과 연구소, 좋은 인재를 모이게 할 기반시설과 정주 여건, 산업을 이끄는 앵커기업 외에 필수 요소로 1000병상 규모 병원이 꼽히는 이유다. 이는 보스턴 등 세계적인 클러스터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앞으로 바이오제약 창업 아이디어는 점점 더 병원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과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임 전무는 "연구업체 입장에서 바이오제약의 소비자는 환자가 아니라 의사라고 생각한다"며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니즈를 파악할 필요가 있고, 어떤 제품을 만들지 같이 고민하고 산업화로 이끄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중 1000병상 이상 병원을 품은 곳은 서울과 송도, 경기, 대전 정도다.

오랜 연구개발이 필수인 바이오 산업 특성상 고급 인력이 선호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수다. 지자체가 가장 고전하고 있는 것이 기업 유치인데, 이는 구성원들이 지방 이전을 꺼리기 때문이다. 최근 제약사 연구소들의 잇단 수도권행은 박사급 연구원을 구하기 힘들어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학성 대전테크노파크 바이오센터장은 "대기업 연구소가 수도권으로 이전해도 대전에 남고 싶어하는 연구자들이 창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정주 여건과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전은 박사급들이 선호해 오히려 2차 창업 붐이 일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송도와 오송 등은 바이오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를 꾀하기도 한다.

[신찬옥 기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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